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렉시오스 3세 (문단 편집) === 찬탈 === 이 무렵 이사키오스 2세의 상황은 심각했다. 연이은 전쟁과 지방의 반란에 부딪혀 정권은 실각 직전이었고, 영토 자체도 황폐해지고 있었다. 바로 이전 해였던 1194년에는 트라키아의 수도인 아르카디우폴리스(Arcadioupolis)[* 지도를 찾아봐도 아르카디우폴리스는 콘스탄티노플에서 겨우 100여 km 정도 떨어진 데 불과한 중심지였으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에서 제국군의 양대 축인 서부군, 동부군 총사령관이 연합한 병력이 불가리아-쿠만 연합군에게 박살나기까지 해 국고는 물론 군사력이 더욱 피폐해졌다. 그러나 이사키오스 2세는 여론에 밀려 기어코 일전을 하기 위하여 모든 국력을 쥐어짰다. 정부와 국내에 회의적인 의견들이 팽배했으며 알렉시오스는 이때문에 찬탈을 결정하게 되었다. 1195년 4월 8일 아침, 원로원과 지휘관들의 지지를 얻으며 알렉시오스는 이사키오스 2세가 산책을 떠난 사이에 황제를 자칭했다.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 소리를 들은 이사키오스 2세는 수십 킬로미터를 도주하였다가 마크리(Makre)에서 붙잡혀 두 눈을 잃고 수감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